제 1 호 [자하교지의 역사-2000년대] 2000년대의 자하
최다빈 명예기자 1.2000년대 자하의 흐름 2000년대, 살아는 있을 때지만 기억조차 희미한 나의 유년기, 그 때 대학은 어떤 곳이었고,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보던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리고 그 때 상명대학교의 교지 자하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있을까? 이러한 호기심이 들었던 나는 종간호 특집으로 쓰게 된 자하의 역사 관련 기사에서 2000년대를 맡게 되었고, 설렘에 부풀어 자하에 있는, 이제는 먼지 묻고 색이 바랜 묵은 향이 나는 2000년대의 교지 아홉 권을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왔다. 2000년대의 교지가 전체적으로 어떤 흐름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의 교지와는 어떤 점이 다른지를 중심으로 9권의 교지를 살펴본 후 2000년대 교지의 흐름을 교지의 구성에 따라 35호-37호(01년-03년). 38-41호(03-07년), 43호-44부(09-10년)의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이제 이 세 부분으로 2000년대 교지의 구성과 교지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2.35호-37호(2001-2003년) 최근의 자하와 다른 점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자면 첫 번째는 전체 기획 외에 개인 기사가 따로 없고 그 대신에 전체 기획 기사에 대해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다루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학내 기사가 따로 없는 최근의 자하와는 달리 2000년대 자하에는 학내, 즉 상명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가 한 파트로 항상 자리 잡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번째로 자하 문학상은 자하에서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시나 소설을 공모하도록 하여 가장 우수한 작품을 교지에 싣도록 한 것인데 36호까지만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네 번째로 옴부즈맨은 지금의 독자투고를 칭하는 이름이다. 지금의 독자투고가 자하에 속하지 않은 상명대의 재학생이 자하에 기사를 싣는 형태라면 옴부즈맨은 상명대의 재학생, 교수님을 넘어 타대생도 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단순히 기사를 싣는 것이 아니라 자하에 대한 평가,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한 제안과 같이 교지를 읽은 소감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각 호의 특징들을 살펴보자. 35호의 전체기획 주제는 코메디였다. 코메디, 일상, 왜곡, 가면, 공감, 도발, 재고라는 코메디의 특징들을 소분류로 하여 기사들이 구성되어 있었다. 여는 글도 이러한 기획 주제와 연관하여 '자하기자들이 생각하는 코메디란?'으로 시작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소분류를 자세히 살펴보자면 '코메디'에서는 코메디 문화에 대해서, '일상'에서는 일상과 코메디에 대해서, '왜곡'에서는 민족주의와 언론사 문제와 같은 왜곡된 현실에 대해서 담고 있었다. 그리고 '가면'에서는 왜곡된 사회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을 코메디라고 표현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나 탈북자 인터뷰와 관련된 기사들을 담고 있었고, '도발'에서는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이 코메디의 목적이라고 표현하면서 여성과 트렌스젠더에 대한 기사를 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재고'에서는 코메디를 세상을 다시 생각해보기 위한 수단이라고 표현하면서 인권과 관련한 기사를 담고 있었다. 코메디라는 큰 주제를 잡고 그것을 특징에 따라 분류하고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과 연관 지어 담아낸 구성이 밀도 있게 느껴졌다. 36호의 전체 기획 주제는 대한민국이었다. 여는 글은 35호와 마찬가지로 전체 기획 주제와 연관 지어 노래 '아! 대한민국 (가수:정태준)'으로 시작하였고 한국,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화젯거리나 문제, 역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2017년 교지의 전체 기획 주제인 '한국에서 살아남기'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다. 세부적인 내용으로는 36호가 발행된 연도가 2002년인 것을 통해 예상할 수 있듯이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 대선 후보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자본주의, 노동권, 언론 등과 같이 지금도 한국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야기들에 대한 기사와 지금도 꾸준히 이야기되고 있는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에 대한 기사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와 관련해서는 민간인 학살, 학생운동과 같은 이야기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를 주제로 한 만큼 당시 화제가 되었던 이야기나 지금도 꾸준히 이야기되고 있는 문제를 다루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37호의 전체기획 주제는 36호가 무거운 주제라서인지 조금은 가벼운 주제였다. 대학과 생활이라는 주제였고 주제에 맞게 여는 글도 가볍게 자하 기자들의 릴레이 소설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특징적인 것은 기사를 파트별로 묶을 때 제목을 속담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내용을노느 학생회, 등록금 투쟁, 대학언론, 대학교육, 농활 등과 같은 당시의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노동자, 성차별, 자본주의 등과 같이 당시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37호에서 놀라운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36호의 배포 불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자세한 이유를 담고 있지 않아서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36호의 전체 기획 주제가 대한민국이었다는 것을 통해 이유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필자가 참여한 2017년 51호 기사와 비슷한 주제였는데 그것이 과거에는 배포되지 못했다는 점이, 그것도 멀지 않은 과거였다는 것이 놀랍고 안타까우면서 분노의 마음이 들었다. 3.38호-41호(2004-2007년) 38호에서 41호까지의 자하의 가장 큰 특징은 전체 기획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전체 기획을 생략하고 사회, 문화, 여성 등의 다양한 주제로 분류해놓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그 전대 교지와 마찬가지로 학내 파트를 따로 마련하여 학내의 여러 가지 소식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38호와 39호는 겉모습이 비슷한데 두께나 디자인이 잡지같은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먼저 38호는 학내, 사히, 사람, 문화로 구서오디어 있는데 기사를 구성하고 있는 내용들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당시에 학내에서, 사회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던 이야기들을 깔끔하게 잘 담아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39호는 38호와 비슷한 느낌의 겉모습을 가졌음에도 그 호만의 특징을 잘 살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체기획은 없지만 아방가르드를 주제로 설정해서 목차나 교지 전체의 디자인이 패션 관련 제목으로 되어 있고 각 챕터 맨 앞에 간단한 설명도 정리되어 있었다. 구성은 학내, 사회, 여성, 노동, 문화로 되어있었다. 학내에서 상명대의 역사를 다루었다는 것이 특징적인데 그것은 자하39호가 2005년, 즉 상명대학교 개교 40주년 특집호였기 때문이다. 40호는 교지 발간 40주년 인만큼 상명대 학교의 총장님, 국장님, 그리고 주간 교수님의 축하 글로 시작이되었다. 구성으로는 학내, 문화, 사회, 인권, 정치, 취업이 있었는데 학내에서는 교지 편집부에 대한 소개와 학교 취업 개발 센터 소개, 그리고 상명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로 7016 버스 기사, 경비 아저씨, 구둣방 할아버지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 또 당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화제가되었던 '서울, 상명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이라는 카페에 대한 소개 기사가 있었다. 문화에는 네티즌, 20 대 외식 문화, 게임 중독에 대 한 기사가 사회에는 학교와 청소년 쉼터, 인권에는 서해 교전, 장애인, 정치에는 북한 미사일과 한미 FTA, 취업에는 투잡 열풍, 상명 인 취업, 이색 알바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역시 다른 교지들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화제를 모았던 이야기들을 잘 담고있는 자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41호는 조금은 딱딱 해 보였던 이전의 자하들과 다르게 겉 모습부터 단풍 나무 디자인으로되어있어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고 작고 가벼워 손에 들고 다니기도 쉬울 것 같은 느낌을주는 교지였다. 구성은 학내, 사회, 20 대, 여성과 문화로되어 있었는데 구성이나 다루는 내용은 이전과 크게 다름없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41호를 기점으로 자하의 디자인이 좀 더 친근하고 각 호마다의 개성이 잘 보였다. 4.43호-44 호 (2009-2010년) 43 호와 44 호의 큰 특징은'콘셉트'을 잡았다는 것이다. 43호의 콘셉트는 '마음 심 '이고 44호는 'HAVE '이다. 콘셉트에 맞게 표지와 목차를 만들어서 각 호만의 특징이 잘 살아있고 기사들이 깔끔하게 분류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43호의 표지에는 "마음을 살펴서 깊이를 찾는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 문장이 43호 자하의 주제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또 '심'이라는 한자의 다의성을 이용해서 살필 심, 마음 심, 깊을 심, 찾을 심으로 나누어서 목차를 정했 다. 살필 심에는 학내의 기사가, 마음 심에는 20 대와 관련된 기사들이, 깊을 심에는 사회, 찾을 심에는 문화 관련 기사들로 구성면에서는 이전 교지와 크게 달라 지진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43 호만의 특징으로는 하나의 챕터가 끝날 때마다 '쉬어가기-자하가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자하 부원들이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한 편지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44호도 43호의 바통을 이어 받아 43호와 구성면에서 비슷한면을 보이고 있는데 콘셉트로 잡은 영어 단어 have가 가지고있는 여러 가지 의미를 이용해서 'have, 얻다 / 경험하다, 앓다 / 참다,하다 /시키다, 만들다'로 목차를 나누었다. 그렇지만 43 호와는 다르게 기사를 종류별로 분류하기보다는 그 뜻에 맞게 분류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럼에도 역시 다루고있는 주제나 내용면에서는 이전 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5.2000년대 자하를 만난 소감 2000년대 자하를 정리하며 가장 많이 느낀 점은 최근으로 느껴지던 2000년대가 사실은 지금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문제들이 있고 그것을 똑같이 교지에 싣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마치 교지를 읽은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지금의 내 모습을하고있는 상명대 학교 자하의 선배 기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온 느낌이 드는 좋은 경험이었다.
제 1 호 [자하교지의 역사-2010년대] 차별없는 세상, 교지의 이정표
주채현 명예기자 1.2010 년대 자하와의 만남. 201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우리들이 상명대 학교에 들어와 교지에서 활동했다. 시아가 넓어졌다. 성인이되고 점점 나 자신에서 시작해, 세상으로 눈을 돌리던시기였다. 급격한 기술의 발전과 90-00세대와는 다른 문화을 누리는 세대들이 등장하여 점점 이전과는 세대 차이가 나는 시대였다. 이전 90-00세대들이 세상에 소리치고 그들의 요구를 외치던 모습들이 있었다면, 2010년대가되면서 표면적인 사회 뒤편에 숨겨진 사회의 소수자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장애인, 페미니즘, 성 소수자를 비롯해 갑 문화와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해 눈길을 돌렸다. 그뿐만 아니라 급격한 기술의 발달에 따라 비트 코인, 웨어러블 기기와 같은 기술 관련 기사도 작성됐다. 혹자는 이러한 급격한 사회 발전과 이면을 들추어내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다.하지만 그러한 방향이 50여 년간 우리 교지가 향해 왔던 길이 아 니었나 생각한다. 2.47호, 50 호 (2013년, 2016년) 2013년을 마무리했던 47 호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어 간 한 해였다. 나라 안에서는 기초 연금과 일베 논란, 여러 종교계의 정치 참여 문제, 통합 진보당 사건 등 국내 외적으로 많은 사건이 1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났다. 그에 따라 교지 또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기자들의 숫자가 늘어났지 만, 타 대학에서 지금 우리처럼 교지가 발행이 중지되었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얘기하지만, 지금은 우리의 얘기이기도하다. 2013년은 전체 기획으로 장애인 등급제 폐지에 대해 기사를 썼다.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 연대 조직 실장과 인터뷰하며 이러한 정부 정책에 대해 억울함을 토해낸 인터뷰 기사도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논했다. 사회의 급격한 발전 이면에 발달하지 못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팍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장애인과 연결해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를 꿈꿨다. '상명 메뉴얼'이라는 주제의 수습 기획은 수습 기자들만의 풋풋한 매력을 발산하기에 충분했다. 버스 이용 팁, 학교 건물의 명칭 및 소개, 도서관과 학교에서 지원 해주는 다양한 취업과 자기 계발 프로그램들을 소개하며 신입생들의 적응을 도와주었다. 2013년도의 일반 기사는 크게 학내와 학외로 나뉘었다. 그렇지만 주제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전체 기획과 동반하여 노숙인이나, 코피노와 같은 사 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해 눈길을 돌렸다. 그뿐만 아니라 갈수록 팍팍해져가는 사회 속에서 기준을 사회에 맞춰 취야하는지 고민하는 청춘들의 목소리를 들려 줬으며, 현재 문제가 되는 청년 실업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시기였다. 대학생들은 청소년 시절 만났던 친구들과는 다르게 변하는 대학 동기들의 모습을 보며 실망하고 좌절하는 현실을 그대로 표현했다. 독자 투고 또 한 장애인 버스 7016'이란 주제로 전체 기획과 평행한 길을 걸었다. 2016년은 2013년과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새로운 정부가 막을 내리는시기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지인과 국정 농단을 벌여 국민들로 하여금 분노를 가득하게했고, 국민들이 그들을 탄핵한 해였다. 많은 대학가에서는 이들을 규탄하며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며 대학생들의 힘을 보여줬다. 국민들은 뭉쳤고, 2016년 12월 3일에는 주최 측 추산 232만명이 참여하여 세계에 대한민국 국민의 힘을 보여 주었다. 또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로 인공 지능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강남역 묻지마 사건으로 많은 시민들이 가슴 아파했고, 그것은 남녀 성 문제로 번지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Are You a Feminist?'라는 표지를 걸고 우리가 모두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들이 소방관이든, 교사든, 학생이든, 그 누구든간에 남녀가 모두 평등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상명대학교 학우들에게 들려 주려했다. 세상을 바꾸는 운동으로 첫 기사를 열어 평등을 외치는 사회를 꿈꾸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성 소수자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일반 기사는 2013년과 다르게 사회, 문화, 심리의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글을 실었다. 사회 부분에서는 노력하지 않는 청춘들을 비판하는 세대들에게 어디까지 '노오력'해야하나요?라는 기사로 젊은 세대들의 취업이 되 지 않는 서러움을 토해냈다. 단순히 노력이 부족해서 청년들이 실패하는 것이 아닌 사회 경제적인 문제가 가로막고 있는데, 과연 청춘이라는 것이 정말로 좋은 것이고 부러워 할만한 것인지 의문을 가졌다. 문화에서는 힘든시기를 보내고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주었다. 전시, 운동, 여행과 같은 생활로 힘들게 각자의 어려움을 이겨내고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심리에서는 현대인들이 가지고있는 걱정들과 불면증 그리고 포기하지 못하는 청춘들에게 삶의 방향성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아무래도 점점 각 박해진 세상 속에 현대인들이 고통받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습 기획도 이러한 현실에 발 맞추어,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모습을 반영했다. '대2 병'이나 '사망년'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즐기고 놀아야 할 대학 생활이 각종 스펙, 성적에 고통 받아 몸부림 치는 대학생의 모습을 그려 냈다. 3.48호, 51호 (2014년, 2017년) 2014 년에는 우리 사회에 '신뢰'라는 것이 세월호와 함께 차갑고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했다. 언론과 정부, 이 사회를 믿지 못하게되었지만, 다시 한 번 힘을 내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다렸던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같았던 해였다. 48 호의 전체 기획은 대학 구조 조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상명대 학교의 많은학과가 통폐합되고 많은학과가 새로 개편되었다. 일어교육과와 불어교육과는 이제는 신입생을 받지 않으며, 이들의 변화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교육적이지 '못한' 교육 정책으로 좋은 취업률을 꿈꾸었던 학과의 게시판에는 내리막인 그래프만 가득했다. 정작 원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 들어온 수업은 강의명과 내용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에 맞춰 수습기획 또한 대학은 'ㅁㅁ'이다는 주제로 대학 생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수습 기자들이 풋풋한 글을 써야 할 수습 기획이 월세, 상 표, 돈 먹는 하마 등과 같은 비관적 인 주제로 이제 막 시작한 대학 생활을 평가했다. 하지만 단순히 비판적이고, 어두운 대학 생활이 아닌,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콕 찝으며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등 행복한 대학 생활을 꿈꾸는 수습 기자들의 소망이 나타났다. 일반 기사의 경우 문화, 사회로 나누었다. 문화에서는 채식주의자부터 팬덤 문화, 문신 연애 등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글을 썼다. 특히 채식주의자와 문신이 이목을 끄는데 이전의 기사들과는 다르게 세상이 평가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이들도 정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위한 기사 였다. 사회에서는 비트 코인이 당연히 이목을 끌었다. 2014년 당시 아무런 주목을받지 못했던 비트 코인은 2017년을 거쳐 어마어마한 존재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기도했다. 하지만 지금과 달리 이때의 비트코인은 단순히 투기를 위한 존재가 아닌 온전히 새로운 화폐를 꿈을 꿀 수 있는 존재였다. 2017 년의 교지는 살아남아야 했다. 이미 다른 학교의 교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몇 개 남지 않은 교지는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예산 부족이라는 이유로, 학교의 목소리를 담당했던 신문방송국의 일원인 교지는 폐부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대학생들은 교지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아야했다. 마치 우리가 어렸을 적 보았던 만화책 'oo에서 살아남기처럼.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산다는 것이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전체 기획은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전개되었다. 북한의 도발, 살충제 달걀, 발암 물질 생리대, 초등 교사 44 % 축소 등. 세계 11 위의 GDP 규모를 자랑 할 정도로 나날이 발전하며 과거보다 살기 좋아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토 록 불안하고 분노하는 것일까? 교지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있는 우리나라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하고, 당연히 받아야하는 교육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과한 요구가 아니라 생각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차벌받지 않고 누릴 수 있어야하고, 당연히 보장 받아야한다고 우리는 얘기했다. 수습기획도 전체기획과 마찬가지로 '상명대학교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학교에 가는 과정을 제목으로 서술했다. '언덕에서', '교양 수업에서', '상명 보릿고개에서', '총학 없던 언덕에서'등 학교를 등교해서 하교하는 그 과정 중 우리를 위협하는 많은 존재에 대해 논했다. 특히 다양하지 않은 교양 수업, 먹기 꺼림칙한 주변 음식점 등 상명대학교 학생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들을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해 수습 기자들은 분노했다. 그 중 학생들의 무관심과 자질 없던 총학생회의 재는 우리에게 너무나 큰 타격으로 다가왔다. 일반 기사는 이전 년도 교지와는 다르게 확실히 유행을 탔다. '시발 비용'라던가 '탕진잼 ', 'YOLO'와 같은 신조어들이 쓰였으며, 청춘들의 삶을 보여주며, 또 이들을 위로하는 기사들이 대체로 많이 쓰였다. 또한 SF와의 만남이라던지 테라포밍, 기술 관련 기사들이 많이 쓰였던 년도다. 기존의 여성 학우들이 많았던 교지에 남성 학우들의 비율이 늘어나며 시작된 변화의 바람이었다. 4.소감 이전 교지들을 보면 시, 수필 등 다양한 문학적인 기사가 가득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 지금의 교지의 모습으로 정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전체기획과 수습기획과 개인들이 써 내려갔던 수많은 주제의 기사들이 7권의 교지에 새겨졌다. 내가 썼던 기사도 있어서 더욱 애착이 가는 시대였다. 하지만 이들이 더욱 나의 마음을 이끈느 것은 표면적인 사회를 보여주지 않고 그 반대편에 숨어있는 개인과 개인을 들춰냈기 때문이다. 성 소수자, 장애인, 사회적 소수자, 코피노 등 누구나 이들처럼 소외될 수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급진적인 발전을 꾀하였기에 이들을 덮어버리고 무시했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들에 집중했고 다시 주목받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종이로 인쇄되는 교지는 여기서 마무리되겠지만 웹진으로도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이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우리의 갈 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불편하겠지만, 그들이 불편함을 위해서 더욱이 우리는 사회의 이면을 들추어낼 것이다. 차별 없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제 1 호 여성들의 만년필 이야기
임지혁 명예기자 (201710846@sangmyung.kr) 우리는 필기구를 어떤 경우에 사용할까? 보통 글을 적어야 하거나 문서에 서명을 해야 할 경우 펜을 손에 잡게 되는 것 같다. 요즘에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있기에 필기구를 쓰게 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는 동시에 과거에는 그 역할을 온전히 필기구가 수행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오늘날 이 전자기기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듯이 과거에는 펜 한 자루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으며, 우리가 예쁘고 성능 좋은 휴대폰을 사고 싶어하는것 처럼 옛날 사람들은 예쁘고 성능 좋은 펜 한 자루를 갖기를 염원했다. 촉을 금으로 만들고 겉은 화려하게 치장된 만년필에 그 관심과 지출이 집중되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금의 상명대는 과거의 상명여대가 남녀공학화된 것으로서 지금으로부터 먼 과거에 자하 교정은 여성들만의 캠퍼스였다고 한다. 아쉽게도 일반적으로 많이 판매된 만년필에 관한 이야기는 여럿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들의 선배들이 갖고 싶어 했을, 여성들이 선호했을 만년필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찾아볼 수 없다. 과연 우리들의 선배들이 갖고 싶어서 밤잠을 설쳤을 만년필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역사속의 만년필들 1920년에는 미국 수정헌법 19조가 통과되면서 여성들에게 참정권의 기회가 보장되었다. 이는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증대됨을 의미했으며 동시에 만년필을 사용할 일도 늘어남을 의미했다. 1920년대에 미국의 만년필회사인 파커와 쉐퍼, 콘클린 등은 이 시기 앞다투어 '레이디'라는 이름을 가진 만년필을 내놓았다. 이들은 남성용의 만년필보다는 살짝 작았으며 그만큼 살짝 더 저렴했고, 클립이 없는 대신 위에 고리가 달려서 목걸이에 고정한 채 휴대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당시의 미국에서 가장 큰 점유율을 가지던 회사는 워터맨이었는데 이 회사에서는 시장을 관망하다가 1930년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레이디'라고 이름 붙인 만년필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대응이 너무 늦었다. 워터맨은 결국 1950년대에 이르면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미국에서의 사업을 철수하고 유럽으로 그 무대를 옮긴다. 1924년 파커 레이디 듀오폴드 광고 [사진 출처: PenHero.com] 1940년대는 전쟁의 시기였다. 남성들은 징집되어 전쟁에 동원되었고 여성들이 사회 산업구조의 곳곳에 투입되어 이전보다 다양한 역할을 요구받았다. 이 시기에는 직접적으로 'Lady'나 'For women'과 같은 문구보다는 'Tuckaway'나 'Demi'와 같은 중성적인 단어가 제품명으로 선정되어 판매되었다. 이러한 만년필들은 여전히 일반적인 모델보다는 약간 크기가 작았지만, 실용적이게 클립이 있는 경우가 많아졌고, 무엇보다도 가격이 일반 모델들과 동등한 수준으로까지 높아졌다. 1960년대 파커 45 레이디 만년필 1960년대는 68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뚜렷한 차이를 보이던 시기였다. 청년세대들은 68혁명을 진행하며 반체제-반문명 운동을 진행했지만 기성세대는 베트남전쟁을 벌이고 달에 사람의 발자국을 남겼다. 이 시기에 가장 대표적인 만년필은 파커의 75라는 만년필인데, 이 만년필의 촉은 금으로 만들어졌으며 몸체는 순은으로 제작되어서 25$의 가격이 책정되었다. 당시의 경제적 주도권을 쥐고 있던 기성세대는 기존보다 고급스럽고 비싼 만년필을 원했고 이는 여성용 만년필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파커의 레이디 45라는 모델은 파커 45라는 저가 만년필에서 클립을 제거하고 외관을 금속으로 고급스럽게 치장한 제품인데 이 만년필의 정가는 7.95$~15$로 일반 모델의 1.6배~3배 가까이 비싼 가격에 판매되었다. 파커의 경쟁사였던 쉐퍼 또한 레이디 쉐퍼라는 모델을 파커보다도 먼저 10$~110$의 가격에 내놓으며 고급 수요를 노리고자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1920년대 가장 늦게 레이디 만년필을 만들었던 워터맨은 반세기도 넘게 지나서는 가장 본격적으로 여성을 위한 만년필을 만든 제조사가 되었다. 워터맨의 레이디 시리즈는 디자인과 소재 등에 따라서 다양한 모델들이 존재했으며 별도의 휴대용 케이스를 동봉하는 'Agathe'라는 모델이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불운히도 이 아름다운 만년필은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 같다. 이 만년필들은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판매되었지만, 여성의 수요를 자극할 수 있는 시대적 사건이 없었고, 동시에 이 아름다운 만년필조차도 그 수요를 자극해내지 못했다. 우리 곁의 만년필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어떨까? 우리는 이미 만년필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되었지만 최근 만년필 시장은 분명 활기를 띠고 있다. '예쁜' 만년필로 '예쁜' 잉크에 '예쁜' 글씨를 써서 SNS에 공유하거나 스스로 간직하고 싶어 하는 캘리그래피 문화가 여성들을 위주로 지난 5년 사이에 널리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특히나 유독 인기를 끌었던 펠리칸의 분홍색 만년필은 이미 웃돈을 얹어 거래되고 있고, 몽블랑의 '어린왕자 에디션'도 고가정책에도 불구하고 성황리에 판매되고 있다. 이들의 거래가는 이미 기존의 남성들에게 인기가 있던 전통적인 만년필의 가격을 넘어선지 오래이다. 2015년 펠리칸 M600 핑크 만년필 [사진 출처:pelikan-passion.com] 1980년대까지의 여성의 만년필은 시대적인 상황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고, 결코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흐름은 그렇지 않아서 ‘예쁜 만년필들’은 이미 주류이면서도 안정적으로 만년필 시장에 편입했다. 아무래도 우리들의 선배들이 꿈꾸었을 만년필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갓 출시된 저 아름다운 만년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제 1 호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 사람들
김지영 신입기자 (201910675@sangmyung.kr)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는 '연결' 과 '정보'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플랫폼(Platform) 산업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일전에는 생소하게 느껴졌던 플랫폼 산업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었다. 플랫폼이라는 말이 아직은 낯설지라도 ‘카카오톡’, ‘배달의 민족’, ‘instagram’을 들으면 우리 일상 속에 플랫폼이 뿌리내렸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 단순히 정류장, 정거장이라는 뜻의 플랫폼 (Platform)은 이제는 경제`경영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단어로 자리잡았다. 플랫폼은 4차 산업혁명의 출현과 함께 등장했고, 이는 시장의 참여자와 참여자를 '연결' 해주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번 기사에서 소개할 공동소송 플랫폼은 요즘 떠오르고 있는 ‘화난 사람들’이란 플랫폼이다. 화난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 공동소송 플랫폼으로 자주 언급되는 플랫폼이 있다. 바로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 사람들’이다. ‘화난사람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일을 당했을 때, 누구든지 쉽고 간편하고 저렴하게 법대로 문제를 해결하고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적에서 2018년 4월 등장한 공동소송 플랫폼 업체이다. 화난사람들은 공동소송에 관심이 있는 참여자를 모집하는 일부터 변호사의 사건 수임, 비대면 법률서비스 수행, 사건 종결까지 법률 서비스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자체 홈페이지에서 사람들을 모아 변호사들과 연결해준 후 공동소송을 진행하거나 탄원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해당 사의 수장인 최초롱 대표는 2013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직후부터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는 “1년차 때 형사부, 2년차 때 민사부에서 근무하며 일반인이 법을 몰라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일반인도 쉽게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2018년 4월, 창업에 나선 그가 선택한 아이템은 공동소송이었다. 억울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변호사 사이에서는 기피 대상 1순위로 불렸다. 수천 명의 소송 참여자를 만나고 관련 서류를 받아 처리하는 일이 힘든 데 반해 손에 쥐는 돈은 적은 탓이었다. 그렇지만 최초롱 대표 변호사는 굴하지 않고 서초에 자리를 잡은 자신의 동기들과는 떨어져 용산 원효상가에 터를 잡았다. 이것이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 사람들의 시작이다. 집단소송의 경우 많으면 수천 명 정보를 일일이 이메일로 받아 전산화한다. 요즘처럼 모든 게 시스템화돼 있는 세상에서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단순 노동을 하는 것이다. 소송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착수금을 무통장 입금으로 보내는데 입금자명을 제대로 안 적고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법원에서 원하는 양식으로 데이터화해주는 집단소송 전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변호사가 회원으로 가입해 이용료를 내고 이 프로그램을 쓴다. 이는 '화난 사람들'의 주 수익 모델이다. 화난사람들은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소송 참여자들이 화난사람들 홈페이지에 소송에 필요한 서류와 피해를 입증할 증거 등을 등록하면 자체 시스템이 이를 전산화해준다. 변호사들은 고된 작업 과정 없이 정돈된 데이터를 얻고 이를 기반으로 공동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사실 화난사람들이 개발한 시스템은 다른 스타트업과 비교하면 첨단 기술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법조계의 보수적인 문화 때문에 이런 시스템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최초롱 대표 변호사는 “공동소송에 참여한 사람들의 전화 대부분은 내가 낸 소송비가 잘 입금됐는지 묻는 내용이었다”며 “그만큼 기존 법률 서비스에 불편함이 많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통상 공동소송은 대법원 판결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결론이 명확하게 난 사건은 많지 않다. 스카이에듀 사건은 소송 없이 억울함을 해결한 사례다. 온라인 강의 업체에서 서울 내 대학교와 지방거점 국립대, 치대·의대·한의대를 합격할 경우 수강료를 100% 환급하는 상품을 판매했는데, 조건을 달성한 학생들이 9개월 넘게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었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화난사람들이 피해자들을 모아 공동소송을 진행하기 전 내용증명을 발송한 것만으로도 환급이 이뤄졌다. 화난사람들의 계획은 제보 신고 기능을 강화하고, 해당 사건의 소송을 최대한 진행하는 것이다. 현재 100명 정도인 변호사 회원 수도 늘려 나갈 예정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공동소송뿐만 아니라 개별 사건도 플랫폼 내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상담을 받고, 예상하기 어려운 소송 결과로 끙끙 앓는 경우를 줄이겠다는 뜻이다. 또한 이들은 집단분쟁뿐만 아니라 고소·고발, 사회문제 캠페인 등 다양한 법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슈 확인은 필수이다. 아침 눈 뜨고부터 잠들기 전까지 여러 이슈를 살펴봐야 한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뉴스를 보고, 공정거래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방송통신위원회 등 사이트에 접속해 주요 현안을 확인한다. 전국 주요판결도 훑어본다. 출근해서는 직원들과 함께 ‘화난 사람들’의 운영 방향에 대해 회의하고, 사이트에 업로드 할 콘텐츠도 제작한다. 대학등록금에 화난사람들 화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전국 대학생들이 등록금 반환 요구를 하는데 이어 대학에 정보공개도 청구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진행된 ‘인강’에 등록금이 제대로 쓰였는지 확인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부실한 비대면 강의로 학습권을 침해받은 학생들이 대학교가 관리 의무를 다했는지 따져보겠다는 의미이다. 화난사람들과 투명한 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전국 대학교 온라인 강의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다. 만약 정보공개청구로 특정 대학교가 온라인강의와 관련한 학교의 관리 의무를 다하지 못해 학생들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 드러난다면, 그에 대해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소송에서 학생들이 이길 가능성이 있다. 정보공개청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직접 관련 서류를 다운받아 정보공개청구를 하거나, 직접 정보공개청구를 하기 어려운 학생들은 변호사가 대신 나서는 방식이다. 화난사람들을 통해 100명이 넘게 신고한 학교는 담당 변호사가 정보공개를 청구한다. 최초롱 대표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수업들에 대한 학생들의 문제제기가 많았다”며 “직접 공개정보청구를 하게 될 경우 학교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을 가능성도 있어 대리 청구도 진행할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대리 청구를 담당하는 박재천 변호사는 “현재 한림대, 중앙대, 이화여대 등 대학에 대한 정보공개청구가 진행됐다”며 “온라인 강의에 어떤 프로그램을 썼는지, 현장 실습 지원비가 얼마나 책정됐고 얼마나 집행됐는지, 교수들이 몇 번 강의를 했는지 등의 정보를 청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등록금을 민사상 채무로 볼 수 있는데, 이를 제대로 쓰지 않았을 때 채무불이행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정보 공개가 이뤄지면 법적 검토로 따져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대학 등록금이 반환된 사례가 없진 않다. 2018년 수원대학교 학생 50여 명이 학교법인과 이사장, 총장을 상대로 낸 ‘등록금 환불 소송’이 대표적인 사례다. 분노에서 성숙으로 화난사람들은 이외에도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 엄벌 릴레이 탄원, 텔레그램 n번방 피해자 법률 지원 공동 홍보, 라임사태 대응 전문가 가이드 제공, 호날두 노쇼 사건 손해배상청구 집단소송, KT아현동 지사 통신장애, 성남 어린이집 성폭행 사건 인권위 조사 요구 진정인 모집 캠페인, 대진침대 라돈 검출 손해배상청구, BMW 차량의 화재 사고 집단소송,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의자 이춘재 신상공개 청원, 대한항공 마일리지 혜택 변경 공정거래위원회 고발,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달을 위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설문조사,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 약관 공정거래위원회 신고 등 다양한 공동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다만 공동소송 자체에도 단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공동소송이 패소했을 경우 그 책임과 손해를 누가, 어떻게 분담할지에 대해 논쟁이 있을 수 있으며 근거 없는 공동소송의 남소(濫訴)로 기업 활동에 큰 제약이 따를 수 있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이렇듯 화난사람들이 공동소송이란 국민의 권리를 돕는 순기능을 발휘하고 있지만 공동소송이 가진 본질적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난관도 남아있다. 공동소송이란 제도가 단순히 보상금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닌 소비자와 이용자를 보호하고 기업의 투명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회전반의 긍정적 영향을 이끌어내는 권리로 정착되어야 한다. 우리가 공동소송 제도를 화난사람들과 같은 플랫폼들을 활용하여 성숙한 제도로 정착시킬 수 있다면 화를 자주 낼 필요 자체가 줄어들지 않을까?
제 1 호 MBTI식 문제풀이
이선우 편집장 (fhfgdvd96@naver.com) MBTI를 바라보는 시선은 현대판 혈액형이라는 평에서부터 유용한 인사관리 자료라는 평까지 다양하지만 정작 MBTI가 어떤 원리와 이유로 쓰이는지 관심을 두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럼에도 MBTI의 활용과 관련된 정보들은 인터넷에 범람하고 있다. 만약 MBTI의 정체를 모르고 이를 활용하는 것은 남용과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MBTI의 원리와 어떤 이유로 활용되고 쓰이는지를 알아보아 인터넷에 확산된 MBTI 관련 정보들의 오류와 MBTI의 남용을 확인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MBTI와 같은 성격유형검사를 어디까지 신뢰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시작에서 비롯된 한계 MBTI는 마이어스-브릭스 성격유형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이다. 캐서린 브릭스와 그녀의 딸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1942년에 같이 개발한 성격검사이다. 카를 융(Carl Gustav Jung)의 심리 유형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검사법인데 여기서 융의 심리 유형론을 좀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융의 심리 유형론은 사람마다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을 내릴 때 각자 선호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융은 사람의 심리를 2가지 방식으로 구분하였는데, 태도 유형과 기능유형이 그것이다. 여기서 태도 유형은 정신적 에너지의 방향으로 구분하며 외부를 향하면 외향성, 내부를 향하면 내향성으로 구분하는 식이다. 그리고 기능 유형은 다시 인식기능과 판단기능으로 나누어서 인식할 때 감각과 직관 중 어느 것을 우선하는지와 판단할 때 사고와 감정 중 어느 것을 우선하는 지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인식기능과 판단기능은 각각 합리성의 유무로 구별되는데 합리적인 기능에는 사고와 감정이, 비합리적인 기능에는 감각과 직관이 해당된다. 융은 이렇게 여덟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 성격이 의식되지 않는 본능적 토대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가설은 융이 1921년에 발표한 저서 ‘심리학적 유형’에 처음 등장한다. 위에서의 긴 설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융이 심리 유형을 구분한 기준은 과학적 근거보다는 융의 개인적인 경험과 주장에 기반을 둔 가설에 가까웠고 발표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다. 비록 융의 심리적 유형론을 비롯한 대부분의 이론은 현대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동시에 본래의 이론들은 재검증을 거쳐 사장되거나 수정되었다. 결과적으로 융의 심리 유형론을 기반으로 한 MBTI는 현대 심리학과는 거리가 멀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MBTI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심리유형검사법이다. 이렇게 한계가 분명한 MBTI가 세계적으로 폭넓게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계에서 비롯된 유행 MBTI는 전 세계적으로 기업과 대학 등의 기관들에서 공식적으론 연간 약 200만 명 정도가 성격 유형을 검사받는 데 쓰이고 있다. MBTI는 다른 심리검사들에 비해 몇 가지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로는 저렴하다는 점이다. 인터넷에는 비공식이지만 무료 검사도 많으며 공식적인 검사 비용도 다른 심리검사들에 비하면 매우 저렴하다. 이는 여러 기관에서 다수의 사람에게 검사하기에 유리하다. 두 번째로는 과정이 간단하며 신속하게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짧은 시간 안에 짧은 교육만으로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MBTI의 확산에 큰 장점이 되었다. 세 번째로는 MBTI의 16가지 성격 유형이 모두 긍정적으로 설명되며 부정적인 면은 보완해야 할 점으로서 짧게만 설명되기에 검사를 받은 당사자들이 대체로 만족하거나 받아들이기 쉽다는 점이다. 사실 이점은 Big5와 같은 다른 심리 검사들에서도 나타나기에 MBTI만의 장점은 아니지만, MBTI를 포함한 심리검사 전반의 유행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MBTI의 확산에 시너지 효과를 주었다. 그러나 여러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시행된 MBTI 검사들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비공식적인 검사법들로 왜곡되면서 심리검사에서 완전한 미신으로 변질되어갔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MBTI의 장점인 간단함과 신속함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쉽게 공식적인 MBTI검사와 비슷해 보이는 검사법을 만들 수 있었고 누구나 쉽고 빠르게 검사 결과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쉽게 결과를 왜곡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인터넷에서 MBTI는 어떤 왜곡을 거쳐 남용되기 시작했을까?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MBTI의 16가지 성격 유형은 케이크 자르듯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유형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사람은 각각의 유형 안에 완전히 포괄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신의 성격유형이 INTP라면 그 성격 유형에서 나타나는 특성들이 본인에게 전부 나타나거나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니다. 또한, MBTI의 성격 유형구분은 모호하고 대략적이기 때문에 커뮤니티에 퍼진 내용처럼 구체적으로 특정 유형들을 설명하고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 자체에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MBTI를 활용한 조언들은 실제 상황에서 부적합한 경우가 흔하다. 역시 예를 들자면 MBTI 유형을 통한 직업 적합성 판단은 마치 “특정 성격 유형에 속한 사람은 본인이 수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으니 수학자가 되는 것이 좋다” 수준의 판단과 같다. 당연히 MBTI를 활용한 이성 간 궁합이나 자신의 성격유형에 적합한 애완동물을 선택하는 등의 MBTI 활용은 그 정확도를 신뢰하기 어렵다. 물론 어디까지나 재미를 위해서 보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자신과 남을 그저 MBTI만으로 규정하여 선입견을 품게 될 위험은 본인이 MBTI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갈릴 수 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은 재미로 점을 보듯이 비공식적인 MBTI 검사를 한다. 그럼에도 자신이 MBTI 성격유형에 집착한다면 어떠한 근거 때문이 아닌 본인이 그 결과를 믿고 싶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떠오른다. “MBTI를 비롯한 심리 검사는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어떤 성격유형 검사를 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질문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왜 심리 검사에 집착하는 것일까?” 불안 속에 받아 든 풀이집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어느 시대보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우라면 자신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을 많이 느낄 것이다. 단순히 취업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성장할수록 더욱더 많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특히나 불안정하고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가 점점 커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거와 달리 점점 더 ‘자신의 선택’의 중요성을 교육받고 접해왔다. 문제는 자신을 알고 스스로 선택의 중요성은 계속 들어왔지만, 자신을 스스로 탐색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선택하는 훈련은 거의 받지 못했고 그럴 기회도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거의 언제나 보편화된 과정을 따라 교육받고 남을 쫓아가는 것만 열심히 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직접 사회에 들어서게 되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삶을 결정하고 책임질 것을 요구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안 그래도 불확실해 보이던 미래가 더 혼란스럽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거치게 되는 기관들에서 처음 접하는 심리 검사들은 간단하고 빠르며 직관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기에 MBTI를 비롯한 심리 검사에 빠져드는 계기가 된다. 특히 공립기관에서도 폭넓게 활용되는 MBTI 검사는 혈액형이나 점성술과 달리 ‘권위’를 가진 조금이나마 신뢰할 수 있는 검사법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재미와 호기심에 국한되지 않고 진지하게 신뢰하는 지표로 MBTI를 활용하는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처음부터 우리는 심리검사를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쉽게 신뢰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오다가 최근의 MBTI 유행을 맞이한 것이다. 사실 심리검사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그중에는 공인된 심리학자들에게도 인정받는 검사법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MMPI(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가 있다. 다만 이 검사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하며 무엇보다 비용이 많이 들고 전문적이라 흔하게 시행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렵고 결과를 해석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기에 MBTI처럼 유행으로 번지기는 어려웠다. 또한 임상에도 활용될 만큼 신뢰성을 보장받았지만 이 MMPI 마저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심리학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자신이 직접 시행하는 심리검사의 특성상 시행자의 특성에 따라 왜곡된 결과가 도출될 수 있으며 애당초 검사 하나만으로 사람의 심리를 정확히 판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처음부터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완전히 신뢰할 수준의 심리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심리검사도 어디까지나 참고 수준의 결과를 도출할 뿐이다. MBTI를 비롯한 심리검사들이 여러 기관에서 마치 시험처럼 시행되고 마치 성적이 매겨지듯이 자신의 성격유형이 정해지고 있는 것이 심리검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시험 성적에 의문을 품거나 자신의 실력을 다시 확인해 보는 것처럼 자신의 심리검사결과를 의심하고 돌이켜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비록 우리가 심리검사에 익숙한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을 그저 풀리지 않는 문제로 치부하고 심리분석 결과라는 답만 보며 스스로를 풀이하는 태도는 마치 풀이만 보고 학습하는 것처럼 자신에 대한 이해를 더욱 어렵게 만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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