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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제 6 호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감성을 찾아

  • 작성일 202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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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7380
정지은

정기자 정지은 202210316@sangmyung.kr


-        뮤직비디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 아이유>  中


  나는 어린 시절 밥 먹을 때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자기 직전까지도 불을 켜놓고 한 번 읽기로 정한 책은 절대 내려놓지 않는 아이였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면 앉은 자리에서 몇 페이지이건 집중해서 한숨에 읽을 수 있는 나름의 집중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시리즈물의 전집이 있으면 무조건 1권부터 시작해 읽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고, 아무리 재미있는 부분이 있더라도 처음부터 읽어야 했다. 생각과 의견을 정리해 글을 쓰는 데에도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냥 솔직하게, 나의 마음을 적어 내려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집중력이 약해지더니 요즘 들어 책의 첫 장을 넘기기도, 아니 책을 한 권 시작하기도 어려워졌다. 취미로 찾아 읽던 독서가 의무감에 읽는 독서가 되어버렸다. 책을 자주 찾지 않다 보니, 큰 고민 없이 술술 써지던 글도 이제는 혹여 괜히 겉멋만 잔뜩 든 엉뚱한 문장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게 되어 한 자 한 자를 써 내려가기가 두렵다. 겨우 한 페이지를 읽고 나면, 혹은 한 문단을 쓰고 나면 나를 쳐다보는 듯한 검은 화면 속 스마트폰에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뻗게 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 「생각하지 않는 사람(The Shallow)」에서는 인터넷이 자신의 정신적 활동을 바꿔놓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한 학생은 “나는 엄청난 양의 글을 읽고, 또 적어야만 하는데, 그냥 훑고만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 또한 ‘국어교육과’라는 주전공과 맞지 않게 독서에 어려움을 겪으며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간이 더 길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면서 부끄러울 뿐이다. 수업 듣는 과목 중,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발문해야 하는 수업이 있었다. 부끄럽게도 여기저기 건너뛰며 주요해 보이는 부분만 골라 읽다, ‘독서를 위한 발문’이 아니라 ‘발문을 위한 독서’가 되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마다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반성하라고 자신에게 외치고는 첫 장을 다시 펴는 것이 다반사였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의 사용은 우리에게 너무나 일상화되었다. 무언가를 잘못 입력했을 때는 그저 ‘되돌리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 마우스 드래그를 통해 오른쪽에 있던 것을 왼쪽, 위, 아래로 옮기는 것은 참 쉬운 일이다. 인터넷의 자료를 ‘복사’, ‘붙여넣기’ 하는 일도 몇 초면 이루어진다. 반면에 종이 위에 한 문장을 써내려 가는 것에는 꽤 많은 애정이 들어가며, 나만의 글씨체로 나만의 글을 만들어가는 것 또한 정성이 가득 필요한 일인 것으로 느껴진다. 물론 종이 위에서는 그 무엇도 수정할 수 없으며 공책 한 장을 찢거나 수정테이프, 지우개로 박박 지우며 자국이 남는 것에 속상해하는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존재하기도 한다. 필기 앱을 사용하다가 종이로 넘어가 필기할 때 혹시 자신도 모르게 허공에 대고 손짓한 적이 있는가. 나는 부끄럽게도 스마트 기기에서 사용하던 버릇이 종이에 나타나서 몇 번이고 허공에 ‘확대’와 ‘축소’를 반복한 경험이 있다. 스마트 기기보다 종이를 사용한 시간이 훨씬 길지만 이미 그러한 기기에 본인의 뇌와 몸이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이 두렵고 한심했다. 뇌가 이미 아날로그 세상보다는 디지털 세상과 더 친해져 버린 것 같았다. 한 가지 일에 몇 분 이상 몰두하기도 힘들어졌다.


  니콜라스 카는 말한다. “나의 뇌는 굶주려 있었다. 뇌는 인터넷이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보가 제공되기를 바랐고,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질수록 허기를 느끼게 된 것이다. ··· 인터넷은 나를 초고속 데이터 처리기기 같은 물건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전의 뇌를 잃어버린 것이다.”라고. 뇌는 그때그때 상황을 봐 가며 과거 방식을 바꿔 스스로 새롭게 정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뇌의 가소성(可塑性)'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사고하는 대로 형성되고 발전하여 우리가 사고에 필요한 영역을 쓰지 않게 되면 이 영역은 다른 기능으로 대체되어 버린다. 이는 우리가 디지털 매체에만 너무 의존하게 되면,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아날로그적 기능이 다른 자극적인 매체 기능에 대체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디지털 세상, 돌아온 아날로그

  세상이 어딘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가만히 앉아 사유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에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인스타그램이 늘 옆에 있다. 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그 누구보다 혼자가 아니다. 자기 전에는 어두운 방 스마트폰 불빛에 의존하여 잠들고, 버스,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에도 우리는 늘 함께한다. ‘뭐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러한 상황이 10년, 50년이 지났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더 고민하려 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에만 우리의 뇌를 의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듯 디지털이 뇌를 다 감싸버리기 전에 우리는 서둘러 아날로그를 찾아야 한다. 사람들은 요즘 사진을 찍기만 하면 자동으로 보정되는 너무나도 고화질의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도, 그 시절 감성을 담아야 한다며 구석에 보관해 뒀던 옛날 스마트폰을 찾아 사진을 찍는다. 따라가려 해도 따라갈 수 없는 옛 감성과 얼추 비슷해 보이는, 흐릿한 필터가 씌워지는 앱을 사용하기도 한다. 지직거리는 소리가 섞이는 레코드판의 감성이 좋다며 예스러운 카페를 찾아가기도 하고, 프린트 한 번이면 될 것을 필름 카메라를 가져다가 인화한다. 누군가 보면 ‘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제부터 이런 아날로그가 유행을 타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이 아날로그가 디지털이 유일하게 가지지 못한, ‘감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표식으로 느껴졌다. 디지털 기기에 지친 뇌가 자연스럽게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게 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독서는 이러한 아날로그 감성을 채워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의무감에 읽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고심 끝에 선택한 도서와, 읽기로 한 마음가짐으로 책을 마주하면 분명 언젠가는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아 디지털 시대 속 ‘쉼표’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책 속의 이야기는 우리를 다른 세계로 초대해 주며, 그 안에서 주인공의 감정과 고민에 공감하게 한다. 책을 읽는 동안에 느끼는 종이의 촉감과 향기는 우리 자신의 감성을 찾아내는 일종의 여행을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을 종이와 펜을 꺼내 주섬주섬 적기 시작하면 그 감정은 오롯이 내 것이 된다. 이처럼 책이 선물하는 아날로그 감성은 우리의 사고를 확장하고, 우리의 시선을 잠시나마 다른 곳으로 돌려 디지털 세상과 멀어지게 함이 분명하다. ‘수많은 책이 보여주는 과묵함 덕에, 또 이 책들은 자신들을 정확히 필요로 하는 독자가 다가와 서고 내 고정석에서 자신들을 빼내 줄 때까지 수년 또는 수십 년을 기꺼이 기다릴 것이다.’ 이 문장이야말로 우리가 독서해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 책은 우리가 먼저 다가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늘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가 이를 한 글자씩 음미하며 이를 읽어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게 된다.


  디지털 세상에서 잠시 나와,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괜히 날이 좋아 뚜벅이 산책을 시작해 보자. 한강에 지는 일몰이 좋아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고, 노래를 듣다 풍경을 바라봤을 때 가을이 다가옴을 느끼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감성이 현재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 속에서 이미 지나가 버린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별거 없다. 내면의 감정과 소통하고, 스마트폰에 열중하다가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주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 현실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나를 돌아보고, 일상의 소중함을 찾아가는 것. 사유의 시간을 통해 우리 자신의 감성을 찾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아날로그 감성은 효율성과 신속한 만을 강조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조금은 답답하기도, 조금은 느리기도 한, 문화일 수 있다. 다만, 그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오래 지속되며, 어딘가 몽글한 그리움을 주기도 한다. 세상이 너무나 변했기에, 디지털과 온전히 멀어질 수는 없다. 디지털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어둡게만 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느 하나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감성을 찾아, 함께 공존해 나가야 함을 말하고 싶었다. 


  만약 당신이 이 글에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너무나 많은 것을 차지해 버린 디지털 세상에 위기감을 느껴 자신의 삶을 한 걸음만큼, 아니 반걸음만큼이라도 감성과 함께 변화하려는 노력을 보이려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감성을 발견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은 정말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고, 대화하고, 독서를 하고 이런 사소한 것 말이다.

 





 [참고문헌]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유재은, ‘아날로그적 감성의 길, 종이책’, 우버인사이트. 2018.03.22.

<https://uberin.mk.co.kr/read.php?year=2018&no=185051>.

윤세미, ‘"엄마 옛날폰 제가 쓸래요"…구식 기기에 열광하는 10대들, 왜?’, 머니투데이. 2023.01.22 <https://uberin.mk.co.kr/read.php?year=2018&no=185051>.

 ‘디지털 시대 속 주목받는 아날로그…"'디지로그' 제품이 뜬다"’, 파이낸셜뉴스. 2022.04.29 <https://uberin.mk.co.kr/read.php?year=2018&no=185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