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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08 호 [영화로 세상 읽기] 말괄량이 소녀 ‘아스트리드’가 스웨덴을 대표하는 전설의 작가가 되기까지

  • 작성일 202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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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7464
김지현

[영화로 세상 읽기] 말괄량이 소녀 ‘아스트리드’가 스웨덴을 대표하는 전설의 작가가 되기까지

영화 <비커밍아스트리드> / 2021


  영화의 주인공인 말괄량이 소녀 ‘아스트리드’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10대 소녀이다. 1920년대 스웨덴의 견고한 기독교 문화와 지역성이 강한 시골에서 자란 평범한 10대 소녀는 이성 교제는 물론 머리 모양 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집안일을 돕거나, 동생들을 돌보거나 하는 그저 허드렛일뿐이었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기본이던 시대였지만 딸의 글솜씨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 덕분에 틀을 깨는 자유로움을 좋아하던 ‘아스트리드’는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게 되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랑을 해보고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스트리드’는 결국 미혼모가 되었고 홀로 양육하게 되기까지의 분투, 작가가 되기 이전 여성으로서의 삶을 이 영화에서 담고 있다.


  1920년대라는 걸 생각해봤을 때, 여자로서 무도회에서 혼자 깨발랄한 춤을 춘다든지 오빠와는 달리 여자라서 더 일찍 집에 들어올 것을 종용하는 엄마의 말에 반대한다거나 블룸버그가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잃은 걸 두고 ‘어미가 자식을 잃은 것만큼 큰 고통은 없지’라고 했을 때 ‘남자도 마찬가지 아니에요?’라고 되묻는다든지 과감하게 긴 머리를 짧게 자르는 장면은 굉장히 신선하다. 이는 남자와 여자로 갈라져 버린 사회의 생각과 시선을 거리낌 없이 부숴 버리는 것인데, 막연히 머리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들을 ‘아스트리드’는 가슴으로 인지한 채 적재적소에 타인에게 말했다. 가슴으로 인지된 개념들은 오래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농익은 삶을 규정하기에 이른다. ‘아스트리드’의 주옥같은 작품들 그리고 약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드높인 사회운동가로서의 활동들이 이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가 혼자 살 수 없을 때, 친구가 손을 잡아주었고, 출산과 양육을 도와준 덴마크의 마리가 있었으며, 전통적 여성을 강조하는 불합리했지만 끝내 ‘아스트리드’의 삶을 지원하고 힘이 되어준 엄마가 있었다. 결혼하지 않기를 응원했고,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래준, 여성이 여성을 돕는, 그래서 함께 힘을 내는 그런 면에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제목이 왜 ‘비커밍 아스트리드’일까? 그녀는 ‘아스트리드’로 태어나 평생 ‘아스트리드’로 살지 않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그녀를 ‘아스트리드’보다 그녀의 남편 성인 ‘린드그렌’으로 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영화를 보면 ‘아스트리드’는 끊임없이 외부에 의해 휘둘린다. 명확하게 하고 싶은 게 있었고 가고 싶은 길이 있었고 의견이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름만 ‘아스트리드’였을 뿐, 정체성으로서 ‘아스트리드’일 수 없었다. 이 영화는 진정한 나로 살지 못했던 여성과 엄마와 아내 아스트리드의 이야기를 보여 주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보고 깨달음을 얻어야 할 대상은 훨씬 광범위할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비록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짧은 시기만을 보여줬을 뿐이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아는 ‘삐삐롱스타킹’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삶을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