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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27 호 [교수사설] 긍정적인 정동적 만남을 위해

  • 작성일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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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6951
김상범

[교수사설] 긍정적인 정동적 만남을 위해


  의학사의 거장인 앤드류 스컬의 저서 ‘광기와 문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신건강은 성서에 기록될 정도로 인류사에서 긴 시간 다뤄졌었다. 그렇지만 1900년도 중엽까지도 정신건강에 대처하는 방식은 ‘언덕 위의 하얀집’이라는 표현과 같이 도시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철저하게 환자를 고립하게 만드는 형태였다. 그리고 정신건강에 취약한 이들의 인권유린은 빈번했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그들이 다시 복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2차세계대전 이후 전복되었다. 왜냐하면 전쟁신경증(shell shock)을 앓고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전통적 가치관에 노골적으로 저항감을 드러낸 여성, 외국인, 사회적 약자 등을 모두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간주해 정신질환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대규모의 배제와 격리가 더 이상 어려워지고, 영국의 정신의학자들을 중심으로 전기충격, 전두엽절제술, 신약투여 등과 같은 인습에 저항하는 ‘반정신의학운동’이 확산하면서 제3의 방식으로 정신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시도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로널드 데이비드 랭은 ‘난리법석공간(rumpus space)’이라고 불리는 실험적 치료 환경을 제공했다. 여기에서는 환자와 의료진의 경계가 없었으며, 민주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자유로우면서도 평등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공간은 조현병 환자에게 특히 효율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그들에게 있어 최선의 치료법은 진정한 존중과 소통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용된 이들은 후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했으며, 난리법석공간의 존속을 위해 경제활동에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현상은 실험적으로 약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지했던 이 공간이 사라진 후, 그간 수용되었던 대다수가 다시 정신적 문제를 일으켜 이곳에 다시 돌아오길 희망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난리법석공간의 지리적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긍정적인 정동(情動)적 만남’일 것이다. 사실 정동은 낯선 표현인데, 희로애락과 같이 일시적이면서도 급격히 일어나는 심리적 상태를 뜻한다. 단지, 정동은 느낌, 정서, 감정 등과 같이 개인의 내부에서 휘몰아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마음, 있는 그대로 수용, 진정한 허락 등은 긍정적인 정동적 만남을, 일정한 잣대에 따른 평가, 엄격함, 편견과 거부 등은 부정적인 정동적 만남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정동은 심리적이며, 정서적인 특징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신체화(somatization)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이유에서 부정적인 정동적 만남은 알 수 없는 신체적 고통(예: 신경계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현재 우리들은 삶은 어떨까. 안타깝지만 부정적인 정동적 만남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전하는 세상 소식만 봐도 그렇다. 경쟁적 관계, 경제위기에 따른 긴장, 적응하기 어려운 변화 등의 사회적 분위기는 깊은 곳에 숨어있는 불안과 긴장을 자극한다. 이뿐일까. 일상생활에서, 특히 매일의 삶이 펼쳐지는 캠퍼스 곳곳에서 느껴지는 무관심, 차가운 시선, 예의 없는 언행, 내로남불식의 이기심 등은 마음을 닫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무방비 상태로 살아가야만 할까? 랭의 난리법석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의 생활을 치유의 장(場)으로 만들 방법은 없을까? 

  굳이 종교적 교훈인 불교의 무재칠시(無財七施)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미소, 반가운 인사, 다정한 말씨, 타인에 대한 이해와 동정 등은 긍정적인 정동적 만남을 만들 수 있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산이다. 사실 타인을 대하는 모습은 나 자신을 향한 태도이다. 타인을 향한 친절함은 높은 자존감을, 불손함은 낮은 자존감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또한 타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뇌의 편도체에 영향을 끼쳐 공포 혹은 불안정 등의 감정을 증폭시킨다. 더 나아가 이러한 현상은 내가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미 뇌과학에서 밝힌 진실이며, 결국 우리는 일종의 거울효과 속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장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긍정적인 동정적 만남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2024년은 긍정적인 정동적 만남을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해보길 제안하고 싶다. 한층 더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보듬는 환경에서 나와 남이 경계가 없음을 알아가는 과정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결국 모두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최고의 방법은 아닐지 싶다. 



공간환경학부 박수경 교수